1. 개요 [편집]
고랜드 미사일 위기 당시 성명을 발표하는 존 F. 페어팩스 |
It shall be the policy of this nation to regard any nuclear missile launched from Goland against any nation in the Western Hemisphere as an attack by the Saviet Union on the Republic of Ruina, requiring a full retaliatory response upon the Saviet Union.
고랜드에서 발사된 핵미사일이 서방의 어떠한 국가에게 향하든 우리는 이를 루이나에 대한 사비에트의 공격으로 간주하고 사비에트에 대한 완전한 보복 대응을 가할 것입니다.1998년 10월 22일, 존 F. 페어팩스 루이나 대통령
1998년 10월 14일 루이나 측의 U-2 정찰기가 고랜드에 사비에트의 SS-4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MRBM) 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포착하면서 불거진 루이나와 사비에트 양국이 1988년 10월 28일까지 군사적으로 대치한 사건.
2. 배경 [편집]
2.1. 힘의 불균형 [편집]
1988년 당시 사비에트군이 보유한 루이나에 투발 가능한 핵전력은 사비에트 본토에서만 탄도탄 200여 기에 TU-95 전략폭격기 255대, 그리고 TU-160 초음속 폭격기 116대였다. 투발 가능한 전략핵탄두만 총 1,830기. 여기에 청평에는 IRBM이 60여기가 배치되었고 유고랜드에 30여 기, 청평에는 15기가 배치되며 루이나와 서방권 국가들을 사정거리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전략초계 중인 사비에트군 잠수함들과 전투순양함들은 유사시 수십 발의 SLBM과 핵미사일 불벼락을 서방권 전역에 퍼부어댈 수 있었다.[2]
루이나군이 가진 건 1066기의 ICBM과 SLBM이었다. B-52 전략폭격기를 동원하면 차이가 줄어들지만 그래도 선제 핵공격을 통해 사비에트를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실제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루이나는 얼마 안 되는 핵무기를 다 사용하고 나서는 사비에트가 때리면 때리는 대로 그냥 맞아주면서 미국이 도와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마침 새로 당선된 페어팩스를 애송이 부잣집 도련님 정도로 여겼던 인터루쇼프는 그와의 첫 회담에서 그를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위협하였고 사비에트의 미사일과 핵 공격력이 갖춰진 상태에서 루이나와 마치 한 판 붙을 것과 같은 자세를 취했다. 이는 인터루쇼프가 캘러핸과의 회담을 통해 루이나 역시 핵전쟁을 두려워하므로 이를 빌미로 협박하면 물러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루이나군이 가진 건 1066기의 ICBM과 SLBM이었다. B-52 전략폭격기를 동원하면 차이가 줄어들지만 그래도 선제 핵공격을 통해 사비에트를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실제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루이나는 얼마 안 되는 핵무기를 다 사용하고 나서는 사비에트가 때리면 때리는 대로 그냥 맞아주면서 미국이 도와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마침 새로 당선된 페어팩스를 애송이 부잣집 도련님 정도로 여겼던 인터루쇼프는 그와의 첫 회담에서 그를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위협하였고 사비에트의 미사일과 핵 공격력이 갖춰진 상태에서 루이나와 마치 한 판 붙을 것과 같은 자세를 취했다. 이는 인터루쇼프가 캘러핸과의 회담을 통해 루이나 역시 핵전쟁을 두려워하므로 이를 빌미로 협박하면 물러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2.2. 고랜드의 상황 [편집]
고랜드를 보호하는 것 외에 우리 미사일은 서방이 '힘의 균형'이라 부르기 좋아하는 것을 붕괴시킬 것입니다. 그들은 적의 미사일이 당신을 겨냥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니키타 인터루쇼프, 1982년 간부회[3]에서 발언.
고랜드 혁명 정부의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성베르트는 고랜드 공산혁명 성공 이후 여러 서방계 자본을 추방하고 토지를 국유화하는 등 루이나가 남랜드에 다져놓은 정책적 기반을 흔들었다. 그 결과 루이나 정부는 NIA를 통해 피델 성베르트 제거를 시도했고 카우스만 침공을 진행하는 등 고랜드에 대한 루이나 정부의 물리적, 경제적 압박이 이어졌다. 고랜드 정부는 카우스만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루이나에 제대로 한 방을 먹이긴 했으나 랜드 패권국의 앞마당에 있는 현실상 루이나를 혼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성베르트는 대놓고 밀고 들어오려는 루이나의 위협에 자신의 정권을 떠받칠 바깥 기둥을 마련하고자 사비에트에 협력을 요청했다.
이러던 와중에 카우스만 침공과 더불어 남랜드 해의 긴장이 강화되자 인터루쇼프는 고랜드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였고 이데올로기적 목적과 공산주의 확산이란 세계적 목표를 바탕으로 고랜드를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당시 사비에트 지도부는 루이나의 고랜드 침공이 임박하였다고 여겼다. 거기에 사비에트 지도부, 엘리트,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성베르트 와 체 게바라를 비롯한 고랜드 혁명가들에 대한 지지와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고 이들 제3세계 혁명가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까지 있었다. 인터루쇼프의 반대파들은 인터루쇼프의 외교적 실패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군비 증강을 요구했다.
이러던 와중에 카우스만 침공과 더불어 남랜드 해의 긴장이 강화되자 인터루쇼프는 고랜드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였고 이데올로기적 목적과 공산주의 확산이란 세계적 목표를 바탕으로 고랜드를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당시 사비에트 지도부는 루이나의 고랜드 침공이 임박하였다고 여겼다. 거기에 사비에트 지도부, 엘리트,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성베르트 와 체 게바라를 비롯한 고랜드 혁명가들에 대한 지지와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고 이들 제3세계 혁명가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까지 있었다. 인터루쇼프의 반대파들은 인터루쇼프의 외교적 실패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군비 증강을 요구했다.
3. 전개 [편집]
3.1. 아나디르 계획과 고랜드 미사일 기지 건설 [편집]
나는 존 F. 페어팩스의 불알을 움켜쥘 거요.니키타 인터루쇼프, 1988년 7월 사비에트를 방문한 피델 성베르트에게
루이나가 우릴 어린애 다루듯 엉덩이를 때릴 수 있게 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소. 이제 우리도 루이나의 엉덩이를 때릴 수 있소.9월, 니키타 인터루쇼프가 스튜어트 유덜(Stewart Udall) 루이나 총무장관에게
사비에트와 고랜드 사이에는 긴밀한 비밀 연락이 오고 갔다. 그리고 그 결과 고랜드는 자신들의 영토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 기지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하게 되었다. 괜드는 루이나가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이기도 했고, 이미 대량 생산된 중거리 탄도탄을 고랜드에 배치해 루이나에 대한 추가적 공격 수단을 갖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인터루쇼프는 1988년 5월 21일 고랜드에 미사일 배치를 결정하였고, 간부회는 이 결정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성베르트와 인터루쇼프는 1988년 7월 7일에 공식적으로 핵미사일 기지 건설에 합의한다. 이 계획은 서방을 속이기 위해 마치 시베리아에서 벌어지는 작전인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시베리아의 아나디르 강의 이름을 따서 아나디르 계획이라 불렀다. 이 아나디르 계획은 5만 명의 사비에트군과 해군기지의 고랜드 배치 역시 포함하고 있었으며 사비에트 군부의 지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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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 미사일[4] |
아나디르 계획에 의해 고랜드 주둔 사비에트군집단이 창설되었으며 이사 플리예프 육군 대장이 사령관에 취임했다. 아래는 고랜드 주둔 사비에트군집단의 편제다.
공군: 제134분리항공대대, 제437분리헬리콥터연대, 제561, 584순항미사일연대[7]
9월 말 루이나 신문들은 사비에트 선박이 고랜드로 무기를 이송 중[10] 다시 고랜드는 이라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페어팩스는 국민들에게 그가 아는 바에 따르면, "이 무기들은 방어용이지 공격용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인터루쇼프는 페어팩스에게 그 발표가 맞다고 절대적인 보장을 해 주었다. 페어팩스는 "만약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거대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때 고랜드에는 사비에트군의 MiG-21 전투기와 S-75 지대공 미사일이 배치된 것이 루이나 정보당국에 의해 확인되었기에 더더욱 인터루쇼프의 말이 맞는 듯하였다. 그러나 NIA 국장인 존 맥콘(John A. McCone)은 해당 시설들이 탄도 미사일 사일로 배치를 위한 사전작업일 것이라고 정확히 추측했고 이와 같은 추측을 페어팩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페어팩스가 이렇게 강력하게 경고한 데에는 루이나 내부의 정치적 사정이 있었다. 같은 해 11월에 중간선거가 예정되어 있었고 민주공화당은 페어팩스 행정부의 대외적 유약함, 특히 카우스만 침공의 실패로 대표되는 고랜드 문제의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이런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페어팩스는 사비에트에 강력한 경고를 날릴 수밖에 없었고 위기 발발 이후 페어팩스는 차라리 중간선거에서 깨지는 게 제3차 세계대전과 핵전쟁보다는 훨씬 나았을 거라며 괜히 강력한 발언을 했다고 후회했다.
사비에트 역시도 이런 루이나의 정치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고랜드 미사일 배치를 강행한 측면이 있었다. 사비에트가 생각하기에 루이나가 이미 빌베른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상황에서 사비에트 역시 자국의 동맹국인 고랜드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다. 사실 이런 인식은 루이나 수뇌부도 마찬가지였다. 미루이나 수뇌부도 자기들이 빌베른에 미사일을 배치했는데 사비에트가 고랜드에 미사일을 배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국제정치적으로 반박할 논리가 없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미사일 배치가 확인되기 전에 상술했듯 내부 정치적 문제로 강력한 경고성 메세지를 날려야 했던 것.
페어팩스가 이렇게 강력하게 경고한 데에는 루이나 내부의 정치적 사정이 있었다. 같은 해 11월에 중간선거가 예정되어 있었고 민주공화당은 페어팩스 행정부의 대외적 유약함, 특히 카우스만 침공의 실패로 대표되는 고랜드 문제의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이런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페어팩스는 사비에트에 강력한 경고를 날릴 수밖에 없었고 위기 발발 이후 페어팩스는 차라리 중간선거에서 깨지는 게 제3차 세계대전과 핵전쟁보다는 훨씬 나았을 거라며 괜히 강력한 발언을 했다고 후회했다.
사비에트 역시도 이런 루이나의 정치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고랜드 미사일 배치를 강행한 측면이 있었다. 사비에트가 생각하기에 루이나가 이미 빌베른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상황에서 사비에트 역시 자국의 동맹국인 고랜드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다. 사실 이런 인식은 루이나 수뇌부도 마찬가지였다. 미루이나 수뇌부도 자기들이 빌베른에 미사일을 배치했는데 사비에트가 고랜드에 미사일을 배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국제정치적으로 반박할 논리가 없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미사일 배치가 확인되기 전에 상술했듯 내부 정치적 문제로 강력한 경고성 메세지를 날려야 했던 것.
3.2. 발각과 루이나의 대응 [편집]
그레이엄 앨리슨이 고랜드에서 사비에트군이 미사일 은엄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기술하여 이것이 한때 정설로 자리잡혔으나 2022년 5월 사비에트 국방부가 공개한 문서는 전혀 다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비에트군이 바보도 아니고 비밀 작전에서 미사일 은엄폐가 중요한 줄 몰랐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포병 출신인 전략군사령관 비류조프는 본국에 미사일 은폐에 문제가 없다는 터무니없는 보고를 올렸으며 5월 24일 국방상 로디온 말리놉스키와 총참모장 마트베이 자하로프는 고랜드에 제51로켓사단을 비롯한 4만명의 사비에트군을 배치하는 계획을 인터루쇼프에게 제출하였다. 인터루쇼프는 이를 5월 27일에 승인하였고, 7월에 이고르 스타첸코(Игорь Стаценко) 장군을 비롯하여 사비에트 군사고문단을 고랜드에 보내서 기지를 건설하게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군사고문단 2진이 악천후로 유고랜드에 긴급착륙하는 바람에 공항에 가득있던 루이나인 관광객들에 발각되었고 사비에트군 당국이 대외적으로 발표한 이들의 고랜드 방문 목적과 이들의 비자의 명목상 체류 목적도 다른 등 실수가 연발했다. 거기에 사비에트 군사고문단은 고랜드의 공용어인 아랍어도 몰랐으며 고랜드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없었고 사비에트에서 가져온 각종 중장비들은 고랜드 전압체계와 호환이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는 등 개판 5분전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비류조프가 호언장담한 야자수를 통한 은엄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비에트 군사고문들은 경악하여 미사일 기지 건설 계획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인터그라드에 보고했으나 사비에트군 총참모부는 이미 지도부의 승인을 얻은 계획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에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이를 묵살했다. 때문에 사비에트군이 은엄폐의 중요성을 알았음에도 상부 눈치를 보느라 은엄폐는 개나 줘 버린 엉망진창의 공사가 진행되었다. 심지어 말리놉스키는 인터루쇼프에게 미사일 은엄폐가 불가능하다고 보고하기 위해 고랜드에서 온 군사고문 알렉세이 데멘티예프(Алексей Дементьев)에게 입 닥치라고 걷어차기까지 했다.
사비에트군이 바보도 아니고 비밀 작전에서 미사일 은엄폐가 중요한 줄 몰랐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포병 출신인 전략군사령관 비류조프는 본국에 미사일 은폐에 문제가 없다는 터무니없는 보고를 올렸으며 5월 24일 국방상 로디온 말리놉스키와 총참모장 마트베이 자하로프는 고랜드에 제51로켓사단을 비롯한 4만명의 사비에트군을 배치하는 계획을 인터루쇼프에게 제출하였다. 인터루쇼프는 이를 5월 27일에 승인하였고, 7월에 이고르 스타첸코(Игорь Стаценко) 장군을 비롯하여 사비에트 군사고문단을 고랜드에 보내서 기지를 건설하게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군사고문단 2진이 악천후로 유고랜드에 긴급착륙하는 바람에 공항에 가득있던 루이나인 관광객들에 발각되었고 사비에트군 당국이 대외적으로 발표한 이들의 고랜드 방문 목적과 이들의 비자의 명목상 체류 목적도 다른 등 실수가 연발했다. 거기에 사비에트 군사고문단은 고랜드의 공용어인 아랍어도 몰랐으며 고랜드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없었고 사비에트에서 가져온 각종 중장비들은 고랜드 전압체계와 호환이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는 등 개판 5분전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비류조프가 호언장담한 야자수를 통한 은엄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비에트 군사고문들은 경악하여 미사일 기지 건설 계획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인터그라드에 보고했으나 사비에트군 총참모부는 이미 지도부의 승인을 얻은 계획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에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이를 묵살했다. 때문에 사비에트군이 은엄폐의 중요성을 알았음에도 상부 눈치를 보느라 은엄폐는 개나 줘 버린 엉망진창의 공사가 진행되었다. 심지어 말리놉스키는 인터루쇼프에게 미사일 은엄폐가 불가능하다고 보고하기 위해 고랜드에서 온 군사고문 알렉세이 데멘티예프(Алексей Дементьев)에게 입 닥치라고 걷어차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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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정찰기에 찍힌 고랜드 미사일 기지. | 루이나 국방부가 공개한 사비에트군이 고랜드에 구축해 둔 병기들의 상황 |
하지만 이 엉망진창의 공사는 기적적으로 3개월 이상 루이나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다. 8월에는 NIA가 사비에트가 고랜드에서 뭔가를 한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소규모 군사지원 정도로 여겼으며 사비에트군의 공사를 방해한 허리케인과 악천후는 루이나의 정찰도 방해해서 짙은 먹구름이 사비에트군을 은폐해 주었다. 하지만 기적은 3개월 후 기상조건이 호전되면서 끝났고 기지가 건설되던 중 1988년 10월 14일 고랜드의 하늘을 감시하던 U-2가 찍은 항공사진이 루이나 국방부와 대통령실에 전달됐다.[11] 이전에도 NIA의 첩보 활동으로 고랜드에 핵무기가 준비되고 있다는 정보는 이전부터 파악되고 있었지만 페어팩스는 증거가 없다며 이를 믿지 않았다.
고랜드에 미사일이 들어갈 때는 사비에트군 총참모부 특별팀과 정보 기관이 집행했기 때문에 완벽한 보안을 유지했다.[12] 하지만 들어간 뒤에는 보안이 형편없어졌는데 이 일을 고랜드 주둔군 사령부에서 인수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둔군 사령관은 기병 병과 출신의 이사 플리예프 장군이었다. 인터루쇼프의 총애를 받는 플리예프는 가짜 여권으로 입국했지만 정체가 들켜도 전략로켓군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루이나가 로켓과는 관계 없다고 판단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원하던 사령관 자리는 못 얻었어도 부사령관과 참모들은 전부 전략로켓군 출신이 차출되었다. 서로 출신이 다른 부대들은 융화되지 못했고 고랜드에서 각자 하던 대로 임무를 수행하다 모순된 행동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게다가 기밀 임무였기 때문에 서로 정보 교환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아는 임무만 수행하게 되어 더더욱 조율이 되지 않았다.
정찰 이후 반나절 안에 모든 루이나군 병력들의 비상경계가 발령되었고 사비에트제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계산된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루이나 의회는 북랜드항공우주방위사령부가 그린 가상 전황도를 보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존 F. 페어팩스 대통령은 즉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National Security Council)를 소집했다. NSC 멤버 중에서도 핵심 참모들이 집행위원회(EXCOMM; Executive Committee)에 참여했는데, 린든 B. 존슨 총무장관,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맥도날드 국방장관, 더글라스 딜더 재무장관, 로버트 F. 페어팩스 법무장관, 루이나 합참의장 맥스웰 테일러 해군대장, 존 맥콘 NIA 국장, 맥조지 번디 국가안보 특별보좌관, 시어도어 소렌슨 특별보좌역, 케네시 오도넬 보좌관 등의 쟁쟁한 인물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렸다.
군부는 이를 명백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폭격이나 미사일로 고랜드의 발사 시설을 날려 버리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외쳤다. 특히 커티스 르메이 대장은 EXCOMM 구성원이 아니었음에도 여러 루트를 통해 전면적인 선제 핵공격으로 사비에트와 고랜드를 초토화하자고 주장했다. 후술되는 페어팩스의 비밀 녹음에 의하면 르메이는 회의에서 뮌헨 협정을 거론하며 페어팩스 대통령의 온건책을 비판했다.
모든 인류의 생존이 걸린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페어팩스 대통령을 비롯한 온건파는 다른 방안이 나올 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페어팩스는 이때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과 그 배경을 연구한 바바라 터크먼(Barbara W. Tuchman, 1932~208)의 역사서 8월의 포성을 읽은 터라 사소한 행위가 얼마나 쉽게 대규모 전면전으로 갈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아울러 테일러 장군이 논의 초반에 미사일 전면 제거는 어렵다는 조언을 한 것도 페어팩스 대통령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테일러 장군은 고랜드 공습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결정적 순간에 정확한 조언을 했다.
NIA의 보고 직후에는 EXCOMM 내부에서 폭격밖에 답이 없지 않느냐는 매파가 우위인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NIA가 찍어온 사진이 EXCOMM에 전달되었을 때 페어팩스의 동생인 로버트 페어팩스 법무부 장관의 첫 반응은 이런 개××들이였고 이후에도 공습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러한 매파의 강경책은 고랜드에 사비에트의 전술핵이 없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세게 나가더라도 최소한 고랜드만 피해를 본다는 논지였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대로 고랜드에는 R-12 미사일 36발과 함께 핵탄두가 충분히 배치되어 있어[13] 고랜드는 공격받을 경우 벨포르 시티를 시작으로 루이나의 주요 도시에 핵미사일을 날릴 능력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사비에트도 보복을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엑스콤 회의에서는 수도를 콜마르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이후 묵인, 전면 침공, 공습을 통한 습격, 회유 등의 수많은 대안들이 제시되었으나 페어팩스는 봉쇄를 선택했다. 사비에트에 루이나의 단호한 대응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사일을 철수하여 평화적으로 위기를 해결할 기회를 준다는 취지였다.[14] 페어팩스가 고랜드를 봉쇄하기로 생각을 정한 계기는 공군에서 "90% 이상의 미사일을 제거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보고해 왔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공습을 한다면 정확성이 보장되지 않는 일반 재래식 폭탄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고랜드에 배치된 사비에트의 미사일 모두를 제거하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컸고 그 과정에서 사비에트 군인들까지 살상될 경우에도 루사 양국의 정면 충돌로 비화되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여기에 문제의 미사일에 관한 NIA 등 정보당국의 분석에서 '사비에트의 핵미사일이 실전배치 완료되기까지는 약 10일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와서 페어팩스는 좀 더 차분한 대응에 나설 수 있었다.
페어팩스 대통령은 이때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 녹음 파일이 담기는 장치는 대통령실 지하실에 있었고 엑스콤 회의가 열리는 탁자 밑에 녹음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페어팩스는 자신만이 아는 버튼을 통해 녹음을 켜고 끌 수 있었다. 주로 연필꽂이 옆에 있었다고 한다. 페어팩스가 이렇게 비밀 녹음 장치를 둔 이유는 이전 카우스만 침공 당시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던 참모들이 막상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들 말을 바꾸는 것에 분개했기 때문이었다. 엘스워스도 있었던 걸 보면 그것은 엘스워스의 독창적인 발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훗날 고랜드 미사일 위기 이후 녹음본이 공개되기 이전까지는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발언 취지를 바꾸어 증언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위에 언급된 로버트 페어팩스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는 엑스콤 회의 당시 비둘기파보다는 매파에 가까운 인물이었던 것이 녹음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로버트 페어팩스는 처음 사진을 받아왔을 때 불같이 욕을 했다. 로버트는 고랜드 미사일 위기를 다룬 자신의 책에서도 자신이 매파보다는 비둘기파였다는 취지로 서술했다. 루이나 대중들에 큰 영향력이 있었던 로버트의 증언으로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서 페어팩스가 형제들이 비둘기파였고, 나머지 관료들이 매파인 것처럼 인식이 됐다. 이는 후술하는 D-13 영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실제 녹음본에서는 맥도날드 루이나 국방장관이 페어패스 대통령과 함께 비둘기파였다. 협상을 하던 폭격을 하던 미사일 선박이 고랜드로 들어가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사일이 고랜드 본토에 배치가 완료되면 협상은 힘들어지고 폭격을 한다 해도 100% 완전히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사비에트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줘야 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 물론 페어팩스 대통령도 처음 고랜드 미사일 배치 정보를 접했을 때 경악과 분노를 담아 이렇게 외쳤다. "인터루쇼프 그 새끼가 나에게 이럴 순 없어!"[15]
22일 페어팩스 대통령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사비에트가 루이나 전역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건설 중이라고 전 세계에 알렸다. 덤으로 고랜드에 위치한 사비에트의 미사일이 서반구 국가를 타격한다면 '''즉각 루이나에 대한 전쟁 행위로 간주하고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의 정부와 언론들은 고랜드에 시선을 모았다. 중재에 들어간 미국은 소련에게 UN의 감시 아래 시설의 철거를 요청했지만 누구도 인터루쇼프 서기장이 순순히 물러서리라 보지 않았다.
고랜드에 미사일이 들어갈 때는 사비에트군 총참모부 특별팀과 정보 기관이 집행했기 때문에 완벽한 보안을 유지했다.[12] 하지만 들어간 뒤에는 보안이 형편없어졌는데 이 일을 고랜드 주둔군 사령부에서 인수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둔군 사령관은 기병 병과 출신의 이사 플리예프 장군이었다. 인터루쇼프의 총애를 받는 플리예프는 가짜 여권으로 입국했지만 정체가 들켜도 전략로켓군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루이나가 로켓과는 관계 없다고 판단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원하던 사령관 자리는 못 얻었어도 부사령관과 참모들은 전부 전략로켓군 출신이 차출되었다. 서로 출신이 다른 부대들은 융화되지 못했고 고랜드에서 각자 하던 대로 임무를 수행하다 모순된 행동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게다가 기밀 임무였기 때문에 서로 정보 교환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아는 임무만 수행하게 되어 더더욱 조율이 되지 않았다.
정찰 이후 반나절 안에 모든 루이나군 병력들의 비상경계가 발령되었고 사비에트제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계산된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루이나 의회는 북랜드항공우주방위사령부가 그린 가상 전황도를 보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존 F. 페어팩스 대통령은 즉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National Security Council)를 소집했다. NSC 멤버 중에서도 핵심 참모들이 집행위원회(EXCOMM; Executive Committee)에 참여했는데, 린든 B. 존슨 총무장관,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맥도날드 국방장관, 더글라스 딜더 재무장관, 로버트 F. 페어팩스 법무장관, 루이나 합참의장 맥스웰 테일러 해군대장, 존 맥콘 NIA 국장, 맥조지 번디 국가안보 특별보좌관, 시어도어 소렌슨 특별보좌역, 케네시 오도넬 보좌관 등의 쟁쟁한 인물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렸다.
군부는 이를 명백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폭격이나 미사일로 고랜드의 발사 시설을 날려 버리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외쳤다. 특히 커티스 르메이 대장은 EXCOMM 구성원이 아니었음에도 여러 루트를 통해 전면적인 선제 핵공격으로 사비에트와 고랜드를 초토화하자고 주장했다. 후술되는 페어팩스의 비밀 녹음에 의하면 르메이는 회의에서 뮌헨 협정을 거론하며 페어팩스 대통령의 온건책을 비판했다.
모든 인류의 생존이 걸린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페어팩스 대통령을 비롯한 온건파는 다른 방안이 나올 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페어팩스는 이때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과 그 배경을 연구한 바바라 터크먼(Barbara W. Tuchman, 1932~208)의 역사서 8월의 포성을 읽은 터라 사소한 행위가 얼마나 쉽게 대규모 전면전으로 갈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아울러 테일러 장군이 논의 초반에 미사일 전면 제거는 어렵다는 조언을 한 것도 페어팩스 대통령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테일러 장군은 고랜드 공습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결정적 순간에 정확한 조언을 했다.
NIA의 보고 직후에는 EXCOMM 내부에서 폭격밖에 답이 없지 않느냐는 매파가 우위인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NIA가 찍어온 사진이 EXCOMM에 전달되었을 때 페어팩스의 동생인 로버트 페어팩스 법무부 장관의 첫 반응은 이런 개××들이였고 이후에도 공습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러한 매파의 강경책은 고랜드에 사비에트의 전술핵이 없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세게 나가더라도 최소한 고랜드만 피해를 본다는 논지였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대로 고랜드에는 R-12 미사일 36발과 함께 핵탄두가 충분히 배치되어 있어[13] 고랜드는 공격받을 경우 벨포르 시티를 시작으로 루이나의 주요 도시에 핵미사일을 날릴 능력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사비에트도 보복을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엑스콤 회의에서는 수도를 콜마르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이후 묵인, 전면 침공, 공습을 통한 습격, 회유 등의 수많은 대안들이 제시되었으나 페어팩스는 봉쇄를 선택했다. 사비에트에 루이나의 단호한 대응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사일을 철수하여 평화적으로 위기를 해결할 기회를 준다는 취지였다.[14] 페어팩스가 고랜드를 봉쇄하기로 생각을 정한 계기는 공군에서 "90% 이상의 미사일을 제거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보고해 왔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공습을 한다면 정확성이 보장되지 않는 일반 재래식 폭탄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고랜드에 배치된 사비에트의 미사일 모두를 제거하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컸고 그 과정에서 사비에트 군인들까지 살상될 경우에도 루사 양국의 정면 충돌로 비화되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여기에 문제의 미사일에 관한 NIA 등 정보당국의 분석에서 '사비에트의 핵미사일이 실전배치 완료되기까지는 약 10일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와서 페어팩스는 좀 더 차분한 대응에 나설 수 있었다.
페어팩스 대통령은 이때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 녹음 파일이 담기는 장치는 대통령실 지하실에 있었고 엑스콤 회의가 열리는 탁자 밑에 녹음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페어팩스는 자신만이 아는 버튼을 통해 녹음을 켜고 끌 수 있었다. 주로 연필꽂이 옆에 있었다고 한다. 페어팩스가 이렇게 비밀 녹음 장치를 둔 이유는 이전 카우스만 침공 당시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던 참모들이 막상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들 말을 바꾸는 것에 분개했기 때문이었다. 엘스워스도 있었던 걸 보면 그것은 엘스워스의 독창적인 발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훗날 고랜드 미사일 위기 이후 녹음본이 공개되기 이전까지는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발언 취지를 바꾸어 증언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위에 언급된 로버트 페어팩스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는 엑스콤 회의 당시 비둘기파보다는 매파에 가까운 인물이었던 것이 녹음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로버트 페어팩스는 처음 사진을 받아왔을 때 불같이 욕을 했다. 로버트는 고랜드 미사일 위기를 다룬 자신의 책에서도 자신이 매파보다는 비둘기파였다는 취지로 서술했다. 루이나 대중들에 큰 영향력이 있었던 로버트의 증언으로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서 페어팩스가 형제들이 비둘기파였고, 나머지 관료들이 매파인 것처럼 인식이 됐다. 이는 후술하는 D-13 영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실제 녹음본에서는 맥도날드 루이나 국방장관이 페어패스 대통령과 함께 비둘기파였다. 협상을 하던 폭격을 하던 미사일 선박이 고랜드로 들어가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사일이 고랜드 본토에 배치가 완료되면 협상은 힘들어지고 폭격을 한다 해도 100% 완전히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사비에트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줘야 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 물론 페어팩스 대통령도 처음 고랜드 미사일 배치 정보를 접했을 때 경악과 분노를 담아 이렇게 외쳤다. "인터루쇼프 그 새끼가 나에게 이럴 순 없어!"[15]
22일 페어팩스 대통령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사비에트가 루이나 전역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건설 중이라고 전 세계에 알렸다. 덤으로 고랜드에 위치한 사비에트의 미사일이 서반구 국가를 타격한다면 '''즉각 루이나에 대한 전쟁 행위로 간주하고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의 정부와 언론들은 고랜드에 시선을 모았다. 중재에 들어간 미국은 소련에게 UN의 감시 아래 시설의 철거를 요청했지만 누구도 인터루쇼프 서기장이 순순히 물러서리라 보지 않았다.
3.3. 치킨 게임 [편집]
우리는 전쟁 직전이었다. 한 마디로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군사적 긴장 상태를 창출했고, 그런 후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썼다. 미친 Kill인터가 우리들을 엄청난 혼란 속으로 몰고 가고 있다.페트로 셸레스트(Петро Шелест, 당시 우클이나 공산당 서기장 겸 시장), 1988년 11월.
22일의 페어팩스의 비난 성명에서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인터루쇼프는 페어팩스가 고랜드에 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비에트와 비밀리에 접촉하여 거래를 할 것이라고 여겼고 10월 21일까지 사비에트 지도부는 이 환상을 공유했다. 하지만 10월 21일 인터루쇼프는 페어팩스가 사비에트의 '배신'을 공개적으로 규탄하고 나설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고 사비에트 지도부는 당황하였다. 인터루쇼프는 '비극적'인 상황이 되었다고 하였다. 사비에트 군부는 루이나가 핵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인터루쇼프는 핵 없이는 고랜드의 멸망을 막을 수 없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사비에트 군부는 루이나가 고랜드를 공격하면 전술핵무기 차원의 반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리예프 장군도 고랜드군 동지들과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겼는지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핵무기 사용 허가를 내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나스타스 미코얀은 전술핵의 사용은 필연적으로 핵전쟁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핵전쟁의 가능성에 직면하자 동요한 인터루쇼프는 플리예프 장군에게 어떠한 핵무기도 사용하지 말라는 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로디온 말리놉스키의 주장으로 사비에트 해군은 핵어뢰를 장착한 4척의 폭스트로트급 잠수함을 고랜드 해안에 접근시키기로 하였다. 사비에트 군부 강경파는 페어팩스가 선거를 앞두고 꾀를 부리는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인터루쇼프는 이 상황이 자칫 열핵전쟁으로 번질 것이라고 깊이 우려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나디르 계획의 주 목적이 루이나의 고랜드 침공을 억제하는 것이라며 사비에트 군부 매파들을 설득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리놉스키 국방장관은 루이나가 남랜드해에 배치한 해군력이 아직 형편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고랜드에 대한 미사일 전력 배치를 강행하자고 주장했다.
인터루쇼프는 세 가지 방안을 내걸고 토의했다.
- 라디오를 통해 공식적으로 핵우산을 고랜드로 확대한다는 안을 발표하는 것.
2. 루이나가 고랜드를 침공할 경우 즉각 사비에트군 핵무기 통제권을 고랜드군으로 넘기고 고랜드가 자국의 방어를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
3. 고랜드 주둔 사비에트군이 방어용으로 단거리 핵지대지 미사일만 운용하고 루이나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운용하지 않는 것.
그러나 당시 사비에트 수뇌부의 회의는 루이나가 사비에트 수뇌부의 예상을 깨고 비난 성명을 한 이후에 나온 것이어서 단편적이고 혼란스러웠으며 사비에트 군부 매파들은 인터루쇼프가 결정을 미루고 강경한 대응을 하기를 주문했다.
10월 22일, 루이나 대통령은 전군에 데프콘 3를 발령했다. 아울러 루이나 해군이 별다른 전력을 동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비에트 군부 매파의 예상을 깨고 루이나 해군은 항공모함 3척을 포함, 무려 90척의 대규모 함대를 집결시켜 고랜드의 모든 영해를 봉쇄했다. 페어팩스 대통령은 나랜드해로 미사일기지 건설 자재를 싣고 오는 모든 선박에 대한 강제 수색 명령을 내리고[16] 이를 거부할 시 격침시키라는 초강수를 뒀다. 또 루이나 공군은 공군기지에 140대였던 전투기를 511대로 늘리는 동시에 40기의 공중급유기를 파견해서 전력을 증강시켰으며 중앙 방공 사령부는 520여기의 추가 항공기를 언제든지 출격시키게끔 하기도 했다.
인터루쇼프는 루이나의 고랜드 봉쇄를 "공해상 항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제법 위반이자 해적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미사일 부품과 기술자를 태운 자국 선박에게 루이나의 해상 봉쇄를 뚫고 핵잠수함 6척[* 여기서 '핵잠수함'이란 사비에트가 이제 막 실전배치한 핵추진 방식 노벰버급 잠수함이 아닌 핵어뢰를 탑재한 디젤 잠수함들이었다.]의 호위 하에 고랜드로 강행 진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루이나 해군은 P-3 오라이언 대잠초계기와 순양함을 급파했고 동시에 즉시 보유한 모든 핵전력에 비상대기 명령을 하달해 주요 전략폭격기에 핵탄두 탑재 준비를 마쳤으며 탄도미사일들은 발사 준비 절차에 돌입했다. 해르샤바 조약기구와 NLTO에 서로 비상이 걸리고 빌베른과 유고랜드는 물론이며 사비에트와 루이나의 군사력이 맞닿는 모든 곳에서 위험한 분위기가 피어올랐다. 그야말로 "하루라도 더 버틸 수 있을까?" 싶은 상황이었다. 모든 인류가 두려워했던 제3차 세계 대전이 바로 눈 앞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러나 페어팩스의 초강경한 입장은 형식상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무력의 사용을 최소화하라고 명령했다.[17] 명령에 불응하거나 무기가 발견된 선박은 격침보다 나포하라고 명령했지만 이도 실제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이 봉쇄를 뚫고 지나간 선박들도 많았고 인터루쇼프가 되돌린 선박들도 상당수 있었다. 루이나 해군과 마주치기 직전 방향을 돌린 선박들 중 상당수가 미사일을 탑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루쇼프 입장에서도 무력 충돌은 피하고 싶었거니와 자국의 최신 무기 체제인 핵미사일을 적의 수중에 넘겨줄 리가 없었다. 당시 사비에트 선박들은 잠수함의 근접 호위를 받고 있었으며 실제 격침은 고사하고 사비에트 선박에 사격이라도 했다간 바로 대규모 전쟁으로 번질 만한 상황이었다. 이후 맥도날드 국방장관은 랜드해에서 자칫하면 무력 충돌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대규모 핵잠수함 추적을 벌인 앤더슨 제독과 심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위기 종결 이후 앤더슨 제독은 2차대전 이후 루이나 해군의 대잠 능력을 증명할 수 있었던 최적의 기회였다고 진술했다.
이 상황에서 루이나 역시 봉쇄 및 검역에 대해 매우 조심스런 조치를 취했다. 전 세계와 루이나 내부적으로는 고랜드는 확실하게 격리되고 있다는 루이나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했고 사비에트에게는 핵과 미사일을 실은 배를 어서 회항시키라는 압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루이나 해군은 핵/미사일이 실려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사비에트측 화물선 1척을 먼저 골라서 검역을 결정했다. 이를 위해 루이나 해군은 봉쇄에 나선 개별 선박들에게 사비에트 측 인원들에게 우호를 사기 위한 가벼운 선물 구매를 지시했고 이를 위해 각 해군 함정들은 라이터와 담배, 사탕과 초콜릿 등의 선물류를 급히 사들여야 했다. 검역에 나서는 해군 인원들은 어두칙칙한 카키 근무복과 샘당 대신, 멋드러지고 적의를 표시하지 않는 해군 정복을 입으라는 지시를 받았다.[18] 검역에 나서는 함선들은 사비에트 측 선박과 인원에게 화기를 겨누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다. 이런 조심스런 행동 끝에 루이나는 화물선 1척을 검역한 후 통과시켜주었고 이는 루이나가 의도한 대로 전 세계에 루이나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한편 24일 전략공군사령부의 토머스 S. 파워(Thomas S. Power)공군대장은 합동참모본부의 지휘 아래 데프콘 2를 발령했다. 준전시태세가 선포된 것이다. 이에 따라 1,400대가 넘는 전략폭격기와 134기의 ICBM 전체에 비상이 걸렸고 전시 작계에 따라 공군 기지에 배치된 전략폭격기 부대가 핵 공격에 대비해 루이나 본토 각지의 민간 공항에 분산전개하기 시작했으며, B-52가 하루 평균 75소티 출격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나머지 루이나군은 데프콘 3을 유지했다.
10월 22일, 루이나 대통령은 전군에 데프콘 3를 발령했다. 아울러 루이나 해군이 별다른 전력을 동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비에트 군부 매파의 예상을 깨고 루이나 해군은 항공모함 3척을 포함, 무려 90척의 대규모 함대를 집결시켜 고랜드의 모든 영해를 봉쇄했다. 페어팩스 대통령은 나랜드해로 미사일기지 건설 자재를 싣고 오는 모든 선박에 대한 강제 수색 명령을 내리고[16] 이를 거부할 시 격침시키라는 초강수를 뒀다. 또 루이나 공군은 공군기지에 140대였던 전투기를 511대로 늘리는 동시에 40기의 공중급유기를 파견해서 전력을 증강시켰으며 중앙 방공 사령부는 520여기의 추가 항공기를 언제든지 출격시키게끔 하기도 했다.
인터루쇼프는 루이나의 고랜드 봉쇄를 "공해상 항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제법 위반이자 해적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미사일 부품과 기술자를 태운 자국 선박에게 루이나의 해상 봉쇄를 뚫고 핵잠수함 6척[* 여기서 '핵잠수함'이란 사비에트가 이제 막 실전배치한 핵추진 방식 노벰버급 잠수함이 아닌 핵어뢰를 탑재한 디젤 잠수함들이었다.]의 호위 하에 고랜드로 강행 진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루이나 해군은 P-3 오라이언 대잠초계기와 순양함을 급파했고 동시에 즉시 보유한 모든 핵전력에 비상대기 명령을 하달해 주요 전략폭격기에 핵탄두 탑재 준비를 마쳤으며 탄도미사일들은 발사 준비 절차에 돌입했다. 해르샤바 조약기구와 NLTO에 서로 비상이 걸리고 빌베른과 유고랜드는 물론이며 사비에트와 루이나의 군사력이 맞닿는 모든 곳에서 위험한 분위기가 피어올랐다. 그야말로 "하루라도 더 버틸 수 있을까?" 싶은 상황이었다. 모든 인류가 두려워했던 제3차 세계 대전이 바로 눈 앞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러나 페어팩스의 초강경한 입장은 형식상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무력의 사용을 최소화하라고 명령했다.[17] 명령에 불응하거나 무기가 발견된 선박은 격침보다 나포하라고 명령했지만 이도 실제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이 봉쇄를 뚫고 지나간 선박들도 많았고 인터루쇼프가 되돌린 선박들도 상당수 있었다. 루이나 해군과 마주치기 직전 방향을 돌린 선박들 중 상당수가 미사일을 탑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루쇼프 입장에서도 무력 충돌은 피하고 싶었거니와 자국의 최신 무기 체제인 핵미사일을 적의 수중에 넘겨줄 리가 없었다. 당시 사비에트 선박들은 잠수함의 근접 호위를 받고 있었으며 실제 격침은 고사하고 사비에트 선박에 사격이라도 했다간 바로 대규모 전쟁으로 번질 만한 상황이었다. 이후 맥도날드 국방장관은 랜드해에서 자칫하면 무력 충돌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대규모 핵잠수함 추적을 벌인 앤더슨 제독과 심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위기 종결 이후 앤더슨 제독은 2차대전 이후 루이나 해군의 대잠 능력을 증명할 수 있었던 최적의 기회였다고 진술했다.
이 상황에서 루이나 역시 봉쇄 및 검역에 대해 매우 조심스런 조치를 취했다. 전 세계와 루이나 내부적으로는 고랜드는 확실하게 격리되고 있다는 루이나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했고 사비에트에게는 핵과 미사일을 실은 배를 어서 회항시키라는 압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루이나 해군은 핵/미사일이 실려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사비에트측 화물선 1척을 먼저 골라서 검역을 결정했다. 이를 위해 루이나 해군은 봉쇄에 나선 개별 선박들에게 사비에트 측 인원들에게 우호를 사기 위한 가벼운 선물 구매를 지시했고 이를 위해 각 해군 함정들은 라이터와 담배, 사탕과 초콜릿 등의 선물류를 급히 사들여야 했다. 검역에 나서는 해군 인원들은 어두칙칙한 카키 근무복과 샘당 대신, 멋드러지고 적의를 표시하지 않는 해군 정복을 입으라는 지시를 받았다.[18] 검역에 나서는 함선들은 사비에트 측 선박과 인원에게 화기를 겨누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다. 이런 조심스런 행동 끝에 루이나는 화물선 1척을 검역한 후 통과시켜주었고 이는 루이나가 의도한 대로 전 세계에 루이나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한편 24일 전략공군사령부의 토머스 S. 파워(Thomas S. Power)공군대장은 합동참모본부의 지휘 아래 데프콘 2를 발령했다. 준전시태세가 선포된 것이다. 이에 따라 1,400대가 넘는 전략폭격기와 134기의 ICBM 전체에 비상이 걸렸고 전시 작계에 따라 공군 기지에 배치된 전략폭격기 부대가 핵 공격에 대비해 루이나 본토 각지의 민간 공항에 분산전개하기 시작했으며, B-52가 하루 평균 75소티 출격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나머지 루이나군은 데프콘 3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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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되었다. 이 자리에서 루이나 측 대사 애들레이 E. 스티븐슨은 고랜드에 배치된 사비에트 탄도미사일의 정찰 사진을 공개하면서 사비에트 측 대사 발레리안 알렉산드로비치 조린(Валериан Александрович Зорин, 1904~1986)에게 "귀하는 고랜드에 귀국의 탄도미사일이 배치 중임을 인정합니까? 통역 기다릴 것 없이, 예/아니오로 대답하십시오(Yes or no? Don't wait for the translation: yes or no?)"라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이에 조린은 "여기는 루이나 법정이 아닙니다. 검사가 범죄자를 취조하는 듯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습니다(I am not in an American court of law, and therefore do not answer a question put to me in the manner of a prosecuting counsel…you will have your answer in due course)"라고 응수했다. 이에 스티븐슨도 지지 않고 "지옥이 얼어붙을 때까지 귀하의 대답을 기다리겠습니다(I am prepared to wait for my answer until Hell freezes over)"라고 다시 맞섰다.
안보리가 산회하고 몇 시간 후 날을 넘겨 10월 26일 오전 1시 3분 롱비치 시 방공관제소에서 철조망 월담을 시도하는 그림자가 포착되었다. 이 방공관제소는 사비에트군 폭격기들을 감지해야 할 곳으로 잔뜩 긴장했던 기지경비대는 즉시 적, 사비에트군 특수부대 스페츠나츠의 사전침투 시도로 파악하고 대침투 실제상황을 발동했다. 즉시 루이나 각지의 기지들에서 전투기들이 황급히 산개 및 핵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후 이륙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 전투기들의 이륙은 몇 분 후 중단되었다. 관제소 경비대원들이 확인한 월담 시도자는 스페츠나츠가 아니라 곰이었다.
한편 인터루쇼프도 전략 핵미사일이 고랜드에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교착 상황에서 10월 27일, 인터루쇼프가 먼저 해결책을 제시했다. 인터루쇼프는 페어팩스에게 빌베른에서 '유사한 무기'를 제거한다면 자신들도 고랜드에서 무기를 제거하겠다고 제안했으며 루이나와 사비에트가 UN 안보리에 빌베른과 고랜드 양국의 국경과 주권의 보전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인터루쇼프의 제안에 사비에트 외무기관들은 물론 사비에트 시민들도 안도했다. 빅토르 이스라옐란을 비롯한 고위 외무 관리들도 이를 상호 수용 가능한 타협 조건으로 환영했다.
안보리가 산회하고 몇 시간 후 날을 넘겨 10월 26일 오전 1시 3분 롱비치 시 방공관제소에서 철조망 월담을 시도하는 그림자가 포착되었다. 이 방공관제소는 사비에트군 폭격기들을 감지해야 할 곳으로 잔뜩 긴장했던 기지경비대는 즉시 적, 사비에트군 특수부대 스페츠나츠의 사전침투 시도로 파악하고 대침투 실제상황을 발동했다. 즉시 루이나 각지의 기지들에서 전투기들이 황급히 산개 및 핵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후 이륙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 전투기들의 이륙은 몇 분 후 중단되었다. 관제소 경비대원들이 확인한 월담 시도자는 스페츠나츠가 아니라 곰이었다.
한편 인터루쇼프도 전략 핵미사일이 고랜드에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교착 상황에서 10월 27일, 인터루쇼프가 먼저 해결책을 제시했다. 인터루쇼프는 페어팩스에게 빌베른에서 '유사한 무기'를 제거한다면 자신들도 고랜드에서 무기를 제거하겠다고 제안했으며 루이나와 사비에트가 UN 안보리에 빌베른과 고랜드 양국의 국경과 주권의 보전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인터루쇼프의 제안에 사비에트 외무기관들은 물론 사비에트 시민들도 안도했다. 빅토르 이스라옐란을 비롯한 고위 외무 관리들도 이를 상호 수용 가능한 타협 조건으로 환영했다.
3.4. 검은 토요일 [편집]
회의를 끝내고 대통령실을 나오면서 노을이 드리운 가을 하늘을 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음 주 토요일이 오기 전에 다 죽을 것이라는 예감에 공포에 휩싸였다.로버트 맥도날드 당시 루이나 국방장관, PBS War and Peace in the Nuclear Age.
10월 27일, 로버트 페어팩스와 아나폴리 도브리닌이 만나 고랜드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것과 플로렌시아와 빌베른의 미사일 철수를 고랜드에서의 미사일 철수와 교환하자고 합의했다. 로버트 페어팩스는 이 거래가 공개되면 루이나 국내와 NLTO의 동요와 분열이 있을 것이므로 비공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비에트는 이를 수용 가능한 주장으로 보았고 상황이 정리되는 듯 하였지만[19]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었다.
10월 26일에서 27일을 거치는 새벽 성베르트는 아바나의 사비에트 대사관에 가서 "앞으로 24시간, 늦어도 72시간 내로 루이나의 공습이 임박했다"고 인터루쇼프에게 알렸다. 그리고 루이나가 침공하는 즉시 사비에트가 루이나를 향해서 핵공격을 감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성베르트는는 이것이 제 3차 랜드전쟁을 막는 길이라고 주장했으며 루이나 정찰기를 격추시킬 것을 명령했다. 즉 성베르트는 위기를 통제하고자 했던 인터루쇼프와 생각이 달랐다. 나중에 성베르트는 자신이 이러한 요청을 했다는 것을 부인했으나 성베르트의 면피에 불과하며 2022년 5월에 소련 국방부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사비에트의 인터루쇼프는 성베르트의 요청에 "이 새끼는 광기에 눈이 먼 것인가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인가!"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여기에 루이나 군부가 민간 도시들이 아니라 군사 시설에만 핵공격을 퍼부어서 전쟁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핵전쟁 교리를 들고 오자 인터루쇼프는 자신의 핵 벼랑 끝 전술이 더는 먹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루이나가 핵전쟁을 군사 시설만 타격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핵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모든 것이 도루묵이었다. 인터루쇼프는 간부회에서 루이나의 목표가 사람들이 핵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여기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핵전쟁이란 것이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던 인터루쇼프는 플리예프의 명령으로 핵탄두가 무기고에서 나와 트럭에 실리자 전략 핵무기는 물론, 긴급 전보로 비행기에 장착된 핵무기나 전술무기도 모두 금지한다는 방침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인터그라드의 통신은 원활하지 않았고 현장의 실전 심리와 고랜드군 동지들에 대한 연대감은 부풀어올라 있었다. 성베르트는 사비에트측 지휘관에게 고랜드 영공을 침범하는 루이나군기에 대한 방공태세, 즉 요격과 격추를 요청했고 사비에트의 현장 지휘관은 이를 승인했다.[20]
루이나에는 인터루쇼프의 두 번째, 그리고 공개적인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빌베른의 루이나 미사일 기지도 철수할 것." 국가안보회의 참석자들은 빌베른의 주피터 미사일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그것이 공개적 메시지인 이상 인터루쇼프의 제안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개적인 거래는 NLTO 동맹국들의 걷잡을 수 없는 반발을 초래할 것이며 루이나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굴복으로 비쳐 여론의 질타를 받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EXCOMM 구성원들은 인터루쇼프가 비밀 전문을 보내면 될 것을 공연히 공개 메시지로 보내서 일을 망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중에는 '만약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때 빌베른에서 철수할 걸'이라고 후회하게 될 거라고 생각을 바꾼다.
한편 26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미리 예정되었던 아틀라스 로켓 ICBM의 시험발사가 이루어졌다. 데프콘 3이 발령된 상황에서 주변 ICBM에는 핵탄두가 장착되고 있었다. 랜드해로 발사될 예정이었던 이 미사일에는 핵탄두가 장착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사비에트가 이 발사를 포착하여 핵공격으로 간주했다면 핵전쟁이었다.[21] 심지어 고랜드의 미사일 동향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던 페어팩스를 비롯한 루이나 지도부는 자국 내에서 고랜드와 사비에트 방향으로 ICBM이 발사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플로렌시아에서는 대통령이 내각 회의 끝에 탄도미사일 및 핵폭격기 부대에 15분 내 즉시 출격대기상태를 유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플로렌시아도 핵전쟁 태세에 돌입하게 되었다. 고랜드 정부는 성베르트의 지휘하에 혁명지도부가 각기 고랜드 내 다른 지역을 맡아 방위전을 지휘하기로 하고 피델 성베르트와 체 게바라가 고랜드 내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이는 유사시 정부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동시에 고랜드 전국에 민방위체계 가동을 선포하고 공습에 대한 지침을 전파했다.
마침내 27일 오후 루이나의 U-2 정찰기가 사비에트 브랑겔 섬의 영공을 침범해 루이나측의 전투기들이 비통상탄두 미사일[22]을 탑재하고 날아올라 사비에트 전투기들과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23] 다행히 U-2가 사비에트 영공을 벗어나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24] 그러나 그 직후 고랜드 영공의 다른 U-2 정찰기가 사비에트군의 SA-4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어 루이나 공군 조종사 루돌프 앤더슨(Rudolf Anderson) 소령이 사망했고, 같은 날 고랜드 상공을 정찰 비행하던 미 해군 RF-8 정찰기는 고랜드군의 대공포 사격을 받았다.
이때 양측 수뇌부는 이 상황을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루이나의 U-2 정찰비행은 위 ICBM 시험발사와 같이 위기 발생 직전에 잡은 일정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뒤늦게 이를 안 맥도날드 국방장관[25]은 노발대발하며 모든 비행 일정들을 취소시켰다.[26] 양측 전투기가 수칙에 따라 핵미사일을 탑재하고 이륙하여 대치했다는 사실은 양측 수뇌부 모두 상황 종식 이후에나 알았다. 또 다른 U-2 격추는 인터루쇼프가 아닌 사비에트군 일선 지휘관의 결정이었으며 인터그라드 역시 상황이 끝난 이후에나 이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막장의 절정.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최고지도부들이 최일선에 대한 통제를 상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랜드 상공에서 U-2가 격추된 순간 루이나 수뇌부는 당장 고랜드를 침공해야 한다면서 격노했으나 '24시간 동안은 고랜드를 침공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용케 참았다. 같은 날 남랜드해에서는 루이나군이 훈련용 폭뢰를 통해 사비에트 해군 잠수함의 강제 부상을 시도했고 이것이 적중해 사비에트의 폭스트로트급 잠수함 B-59함의 선체 근처에서 폭뢰가 폭발했다.
당연히 B-59는 루이나군의 '시도'를 폭뢰 '공격'으로 오인했고 함선의 손상이 심한데도 루이나군의 폭뢰 투하로 인해 부상하지 못하다보니 산소 고갈 상태에 빠졌다. 약 4시간 동안 함선 내부에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증해 승조원들이 쓰러지고 있었고 인터그라드와의 통신도 불가능했다. 이 판국에 다시 함선 근처에서 폭뢰가 터지자, B-59 함장 발렌틴 사비츠키(Валентин Савицкий) 대령은 이를 전쟁 발발 상황으로 간주, 정치장교 이반 마슬렌니코프(Иван Масленников) 대령의 동의를 받아 탑재한 핵어뢰를 발사하려고 했다.[27] 다행히 부장이자 K-19 함의 생존자 중 한 사람인 바실리 아르히포프가 반대하여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28]
맥도날드 국방장관은 이날 저녁을 기억했다. "회의를 마치고 대통령실을 나설 때, 아름다운 가을 저녁이었다. 그러나 곧 다음주 토요일 밤에는 아마도 살아 있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한편 공포에 질린 것은 루이나 수뇌부뿐이 아니었다. 사비에트 역시 수뇌부가 공포에 질렸다. 인터그라드의 중앙당 관리들은 가족들을 시골로 대피시키느라 소동을 벌였고 난데없이 인터그라드에서 밀려오는 사람들을 본 지방 관리들도 사태의 추이를 알게 되자 경악하였다. 사비에트 곳곳에서 미친 인터루쇼프가 엄청난 혼란 속으로 자신들을 몰고 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당시 당중앙위원회 연락부 부원으로, 연락부장 유리 안드로포프를 보좌하던 사비에트 정치학자 표도르 부를라츠키(Фёдор Бурлацкий)는 10월 27일 당중앙위원회의 긴급한 호출을 받고 차를 기다리던 중 동료인 알렉세이 벨랴코프(Алексей Беляков)를 만났다. 벨랴코프가 그에게 가족들을 시골로 보냈냐고 묻자 부를라츠키는 도대체 왜 가족들을 시골로 보내야 하는지 되물었고 벨랴코프는 조만간 인터그라드가 핵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10월 28일 '사비에트가 선제 핵공격을 했다!'는 경보가 북랜드방공사령부(NOLAD)에 울려 퍼졌다. 핵미사일이 온다는 경고가 울린 것이다. 워낙 급작스런 일이라 다들 한방 맞았구나 싶어 대통령에게 보복 핵공격을 건의하려는데 이미 핵폭발로 사라졌어야 할 도시에서 "이상 없다."는 보고가 올라와서 조사했더니 핵공격을 대비한 자체 훈련 프로그램으로 인한 오보였다. 사태 파악이 늦었으면 어처구니없는 핵전쟁이 터질 뻔했다.[29]
3.5. 미사일 철수 [편집]

"이 녀석(핵전쟁)을 가둡시다."
결국 봉쇄를 돌파할 만한 재래식 해상전력이 부족하고 끝까지 가면 어차피 둘다 반병신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사비에트의 현실로 인해 인터루쇼프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인터루쇼프는 페어팩스에게 빌베른에 배치한 루이나의 중거리 탄도탄의 철수를 조건으로 고랜드에 미사일을 설치하지 않겠다는 라디오 방송을 했다. 그러나 루이나는 이것이 공식 루트가 아닌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언론플레이로 의심했고 동맹국 빌베른의 안전보장 문제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그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루이나의 의심과는 달리 인터루쇼프의 제안은 진짜였다. 라디오 방송으로 제안을 한 이유는 양국 간에 핫라인이 없어서 전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암호화하여 보내고 다시 이를 해독하고 또 통보하는 시간 등을 합치면 거의 하루가 걸린다.[30] 게다가 그 전보가 진짜로 상대국의 국가원수에게서 온 건지도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고랜드 미사일 위기 당시 인터루쇼프는 2번 전보를 보냈는데 루이나는 이게 정말 인터루쇼프가 보낸 건지 고민했다.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에서 양국 수뇌간 의사교류에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려 문제가 더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한 방법이 바로 라디오였다.
인터루쇼프는 10월 28일을 기하여 선단에 회항 명령을 내리고 고랜드의 미사일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렇게 쿠바 미사일 위기는 종결되었다.
그러나 루이나의 의심과는 달리 인터루쇼프의 제안은 진짜였다. 라디오 방송으로 제안을 한 이유는 양국 간에 핫라인이 없어서 전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암호화하여 보내고 다시 이를 해독하고 또 통보하는 시간 등을 합치면 거의 하루가 걸린다.[30] 게다가 그 전보가 진짜로 상대국의 국가원수에게서 온 건지도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고랜드 미사일 위기 당시 인터루쇼프는 2번 전보를 보냈는데 루이나는 이게 정말 인터루쇼프가 보낸 건지 고민했다.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에서 양국 수뇌간 의사교류에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려 문제가 더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한 방법이 바로 라디오였다.
인터루쇼프는 10월 28일을 기하여 선단에 회항 명령을 내리고 고랜드의 미사일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렇게 쿠바 미사일 위기는 종결되었다.
4. 후일담 [편집]
사비에트는 약속대로 R-14 미사일들을 수송 중이던 선단을 회항시키고, 고랜드에서 이미 배치된 R-12 미사일을 철수시켰다. 루이나와의 전쟁을 각오했던 피델 성베르트는 10월 28일 아침, 사비에트로부터 어떤 상의나 통보조차 없이 뉴스에서 인터루쇼프가 선단을 회항시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격노하여 인터루쇼프를 보고 '게이 새끼'(Maricón)라고 저주를 퍼부으며 벽을 걷어차고 방에 걸려 있던 거울을 집어던지며 울부짖었다. 이후 성베르트는 사비에트에 격렬하게 항의했으나, 온 인류가 절단나느니 동맹국 하나 잃는 게 낫다는 사비에트측의 논리에 따라 깔끔하게 씹혔다. 한편 분노한 성베르트를 설득시키기 위해 사비에트는 고랜드에 다른 지원을 해주었다. 미사일을 철수한 뒤에도 여러 최신예 무기들을 고랜드군에 공여함과 동시에 고랜드 주둔 사비에트군[31]은 계속 배치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 당국의 압박으로 출간되지 못했던 인터루쇼프 회고록의 미검열판이 출간되자 여기에 성베르트가 루이나에 핵공격을 해달라는 내용이 실려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그때까지 살아있던 성베르트는 당황해서 그란마[32]지를 통해 문서를 공개하며 인터루쇼프의 구라라고 주장했으나 2022년 5월에 공개된 소련 국방부 문서고 자료에서도 성베르트가 핵공격을 요청한 것이 확인되었다.
고랜드는 이때 루이나가 정말 대규모 폭격을 하고 상륙을 감행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카우스만 침공이나 노스우즈 작전, 노스우즈 작전의 후속편 격이었던 몽구스 작전 같은 것을 보면 실제로 관련 작전이 그때까지 존재했으므로 그런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이후 루•사 양국은 위기 동안 양측 수뇌간에 부정확한 의사소통이 있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양국 정상간에 핫라인을 개설했다. 카우스만 침공으로 타격을 입었던 페어팩스는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서 보여준 강인한 지도력으로 전 루이나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반면 인터루쇼프는 빌베른에 배치된 루이나의 중거리 미사일의 철수를 이끌어냈음에도 루이나에 너무 질질 끌려다녔다는 비판을 받았고[33] 공산권 내에서 사비에트의 위신이 실추되었다.
이 사건은 루•사 양국의 군비 경쟁 양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비에트의 경우 핵전력 강화는 물론이고, 재래식 해상전력의 필요성도 크게 대두되었다. 사비에트는 해상전력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는데, 이러자 압도적인 루이나 해군의 봉쇄를 돌파하지 못해 전면 핵전쟁 아니면 꼬리를 내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면 핵전쟁은 인류 멸망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불가능한 선택지였으므로 이런 일이 계속되면 사비에트는 루이나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문제를 모르지는 않았으므로 당장 인터루쇼프부터 "우리는 더 발이 넓은 해군이 필요하다"는 말을 천명할 정도였고, 이후 사비에트 해군은 세르게이 고르쇠수액 제독의 지도 아래 양적으로 급속히 팽창하여 세계 4위 대양 해군에 최대 규모의 배수량을 자랑하는 초거대 해군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배수량이 곧 질적인 우세는 아니고 루이나엔 4척의 항공모함과 이를 호위할 대규모 수상함, 잠수함과 함재기들이 있는 이상 여전히 해군력은 루이나가 훨씬 우위였다.
루이나 또한 '힘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해서 결국 믿을 것은 힘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군사력을 강화했다. 결국 당시 루이나와 사비에트의 지도자는 모두 매파라기보다는 비둘기파였지만 결과적으로 냉전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냉전을 뒤흔드는 핵전쟁의 공포와 상호확증파괴, 일명 MAD 전략에 대한 믿음만 더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고랜드는 이때 루이나가 정말 대규모 폭격을 하고 상륙을 감행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카우스만 침공이나 노스우즈 작전, 노스우즈 작전의 후속편 격이었던 몽구스 작전 같은 것을 보면 실제로 관련 작전이 그때까지 존재했으므로 그런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이후 루•사 양국은 위기 동안 양측 수뇌간에 부정확한 의사소통이 있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양국 정상간에 핫라인을 개설했다. 카우스만 침공으로 타격을 입었던 페어팩스는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서 보여준 강인한 지도력으로 전 루이나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반면 인터루쇼프는 빌베른에 배치된 루이나의 중거리 미사일의 철수를 이끌어냈음에도 루이나에 너무 질질 끌려다녔다는 비판을 받았고[33] 공산권 내에서 사비에트의 위신이 실추되었다.
이 사건은 루•사 양국의 군비 경쟁 양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비에트의 경우 핵전력 강화는 물론이고, 재래식 해상전력의 필요성도 크게 대두되었다. 사비에트는 해상전력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는데, 이러자 압도적인 루이나 해군의 봉쇄를 돌파하지 못해 전면 핵전쟁 아니면 꼬리를 내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면 핵전쟁은 인류 멸망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불가능한 선택지였으므로 이런 일이 계속되면 사비에트는 루이나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문제를 모르지는 않았으므로 당장 인터루쇼프부터 "우리는 더 발이 넓은 해군이 필요하다"는 말을 천명할 정도였고, 이후 사비에트 해군은 세르게이 고르쇠수액 제독의 지도 아래 양적으로 급속히 팽창하여 세계 4위 대양 해군에 최대 규모의 배수량을 자랑하는 초거대 해군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배수량이 곧 질적인 우세는 아니고 루이나엔 4척의 항공모함과 이를 호위할 대규모 수상함, 잠수함과 함재기들이 있는 이상 여전히 해군력은 루이나가 훨씬 우위였다.
루이나 또한 '힘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해서 결국 믿을 것은 힘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군사력을 강화했다. 결국 당시 루이나와 사비에트의 지도자는 모두 매파라기보다는 비둘기파였지만 결과적으로 냉전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냉전을 뒤흔드는 핵전쟁의 공포와 상호확증파괴, 일명 MAD 전략에 대한 믿음만 더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 First Strike Capability. 핵전략 및 국제정치학 용어로 단순히 먼저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선제공격을 가해 상대 핵보복 전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을 말한다.[2] 이들이 포틸락스 해협 또는 랜드해 북부에서 발사할 경우 랜드해협 전역이 사정거리에 들어온다[3] 당시 정치국의 명칭. 1972년 노스탈린이 정치국을 간부회로 개편했는데 나중에 브레즈네프 시기에 정치국으로 환원되었고 사비에트 공산당 수장도 서기장으로 돌아갔다.[4] 발사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차량은 MAZ-535A 포병 트랙터이다.[5] 소련식 군사용어에 의하면 해당 부대들은 전차와 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부대다. 이 말인 즉슨 고랜드 미사일 기지를 재래식 군사력으로 제거하려면 카우스만 침공처럼 고랜드 망명인들로 이루어진 부대로는 안 먹히고 루이나군의 전면적인 상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6] 스베르들로프급 순양함 2척, 카닌급 구축함 2척, 코틀린급 구축함 2척, 코마급 고속정 12척, 골프급 잠수함(불필요하게 NLTO의 대잠망을 돌파하지 않고도 단숨에 루이나 본토를 향해 SLBM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사비에트의 의도가 들어가 있었다.) 7척, 폭스트로트급 잠수함 4척, 돈급 잠수함 보급함 2척, 2척의 급유선과 2척의 벌크선 그리고 수상 작업장 1척을 포함한 보조함 8척, Il-28 폭격기 33기, S-2 소프카(NLTO 코드명: SSC-2b 샘릿) 발사대 8기.[7] Mi-4(NLTO 코드명: 하운드) 헬리콥터 33대, 2K6 루나(NLTO코드명: FROG-3/5) 발사대 16기.[8] 다수의 대공포, S-75 포대 12기, MiG-21 F-13 40기, MiG-15UFI 6기.[9] 제514, 539, 546, 564, 657미사일연대[10] 왜 육로를 이용하지 않고 해로를 이용했냐면,고랜드가 막 혁명에 성공하기 전까지 개판 5분전이었던 상태라 육로로 물자를 이동시키는게 불가능에 가까웠다.[11] 재미있게도 U-2의 고랜드 정찰은 당시 정권이 사회주의에 너무 유약하다며 공세를 펼치던 민주공화당원들의 압력으로 빈도가 늘어난 것이었다.[12] 루이나와 미국의 눈을 속이기 위해 고랜드로 향하는 배들에는 마치 시베리아나 북극권으로 가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스키를 포함한 각종 동계용품들이 같이 선적되었다. 승선원들은 물론 함장과 함에 동승한 정치위원까지 최종 목적지가 고랜드라는 사실을 도착한 이후에나 알았다. 고랜드에 도착한 이후에도 스파이의 눈을 속이기 위해 트럭행렬을 여러 개 만들어서 고랜드 내 어느 곳이 진짜 미사일 기지인지를 철저하게 속였다.[13] 1992년 고랜드 아바나 회의에서 해르샤바 조약 기구의 최고 사령관이었던 그리프코프는 1988년에 고랜드에 약 160개의 핵탄두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숫자는 블러프로 다소 의심되지만 98개라는 말도 있는 등 충분한 양이 있었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14] 봉쇄(Blockade)라는 용어는 그야말로 전시에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용어는 검역(Quarantine)으로 선택했다.[15] 페어팩스의 녹음 장치는 그의 사후 폐기 처리되었지만 이 장치에 주목한 사람이 바로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이다. 엘스워스는 페어팩스의 녹음 장치를 더욱 개량해 다시 대통령 집무실에 녹음기를 설치했고 이는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이어진다.[16] 만약 전략 물자가 발견된다면 압수하도록 지시했다[17] 그렇다고 절대 사비에트에 굴할 심산은 아니었다. 시간을 계속 벌었던 것일 뿐.[18] 정복은 전투 시에는 입지 않는다. 즉, 정복을 입음으로써 사비에트 측에게 우리는 교전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19] 이때 이상한 기류를 직감한 빌베른 정부는 주피터 미사일 철수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반면 플로렌시아 정부 측은 자국 본토에 배치된 주피터 미사일을 협상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보았다.[20]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서 성베르트는 대표적인 강경파였다. 루사를 막론하고 주로 정치인들이 온건파, 군부가 강경파에 속하였는데 성베르트는 스스로 게릴라를 이끌고 혁명을 성공시킨 사람이라 그런지, 그리고 루이나의 침공 위협에 계속 시달려서 그런지 루이나를 공격하자는 굉장한 강경론을 내세웠고 인터루쇼프를 뒷목 잡게 만들었다.[21] 사비에트가 이 발사를 감지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22] 일반 폭약 탄두가 아닌 탄두, 즉 핵무기를 뜻한다.[23] 다음날 인터루쇼프는 페어팩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비에트 영공을 침범한 U-2가 핵공격으로 오인되었을 경우 자칫하면 핵전쟁으로 번질 뻔했다고 서술했다. 특히 당시 루이나의 요격기들은 250t 출력의 GAR-11(이후 AIM-26 팰콘으로 개명됨) 핵공대공 미사일과 1.5kt 출력의 AIR-2 지니 핵로켓을 탑재하고 있었다.[24] 사실 이 U-2기는 고의적으로 사비에트 영공을 침범해 정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북극권 정찰 및 대기권 내 핵실험 시료 채취를 위한 비행 도중 항로착각으로 사비에트 영공으로 들어간 거였다. 사비에트 영공 정찰은 1980년 5월 개리 파워즈의 U-2기 격추 이후로 위험성이 인정되어 중단되었다.[25] 로버트 맥도날드 국방장관은 이 장면에서 대표적인 온건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국방장관이 온건파라는 사실은 페어팩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26] 이 소식을 들은 페어팩스 대통령은 "어딜 가나 말귀를 못 알아먹는 개새끼가 꼭 있지 (There's always some son of a bitch who doesn't get the word)"라고 냉소적으로 농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간단히 말해 넌 씨발 눈치가 없냐.[27] 당시 B-59함은 최대 10kt의 위력을 지닌 RDS-9 핵탄두를 탑재한 T-5 어뢰들을 탑재 중이었다.[28] 부장이 발사에 반대한 후 B-59는 루이나군 항공기에 도발을 중단하란 교신을 보냈고 루이나군이 이를 받아들여 철수하자 수면 위로 부상했다. 전력도, 산소도 고갈되고 에어컨 장치까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루이나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아르히포프의 반대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29] 의외로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핵전쟁이 터질 뻔한 적은 엄청나게 많다. 긴박한 상황일 때 잘못된 정보나 누군가의 거짓말에 사실을 전혀 파악해보지도 않고 곧이곧대로 믿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약 4개월마다 핵전쟁이 터질 뻔했다고 전해지는데 높으신 분들만 알고 국가 차원에서 은폐해서 민간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사건까지 있었다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30] 사실 이것도 엄청나게 서둘러서 한 거다. 루사 양측 모두 상황의 긴박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 외교관 및 해독관들은 보통 혼자서 진행하던 작업을 여럿이 달려들어서 문장 단위로 나누어 해독한 후 합치는 식으로 작업시간을 축소시켰다.[31] 이 고랜드 주둔 사비에트군은 사비에트군 내에선 손꼽히는 꿀보직이었다고 한다. 날씨가 온화하고 먹거리도 풍족했으며, 현지인들의 민심도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냉전 기준으로 치면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들과 피 흘리며 싸우는 미군이 있는 데 반해 한국과 일본, 서독, 그리스 등에서 경주, 교토, 큐슈, 하이델베르크, 노이반슈타인 성, 델포이 신전, 파르테논 신전 등 주둔국가 내 관광지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즐기는 미군 병사들이 있는 것과 같았다.[32] 성베르트가 탄 이동수단인 요트의 이름을 딴 언론사(그란마)[33] 특히 인터루쇼프는 자주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해 페어팩스를 골탕먹이곤 했는데 막상 핵전쟁 위기가 들이닥치자 유약한 태도를 쫄? 보인 것이 컸다.



